글또 10기를 마무리하며

Mar 30, 2025

빠르게 지나간 6달을 돌아보며..

사실 마지막 12주차 글은 기술 글로 마무리할까 싶었는데, 이상하게 손에 잡히지 않아 급하게 회고로 틀었다.

24년 회고에 글또 활동의 절반을 얼추 적긴 했는데, 디테일도 부족하고 연말에 의무감때문에 적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이번에 10기 활동을 마치면서 반 년 가량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자.

이번 회고의 목적은 글또 시작 당시의 목표를 돌아보고 아쉬운게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적는 것이다.

글또의 시작

딸기 농사 한 작기를 마치고, 작년 7월에 서울로 올라온 나는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방향을 잡지못해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배 같았다.

보통 개발을 시작하면 부트캠프를 가곤 하는데, 나는 혼자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 모를 확신이 있어서 혼자 공부를 계속 이어나갔다.

개발 스택도 얼추 정했지만 시장이 얼어서 그런건지 내 결과물이 흥미롭지 않아서 그런지 면접까지 가는 비율이 적었다.

거기에 ‘내가 되고자 하는 개발자의 모습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개발자로서 뭔가 추구미가 없었다고 해야될까..

그러던 중, 우연히도 (아마 트위터였던거 같은데) 글또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거기다 온라인에서만 보던 개발자들과 만날 수 있는 네트워킹 기회도 있다?

비전공자로 개발을 시작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 중 하나가 ‘네트워킹’이었다.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었던 것! 너무 좋은 기회여서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걸 시작부터 ‘삶의 지도’를 쓰라니 이 무슨?!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현재의 내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글을 작성해본적이 좀 되어서 신선하기도 했고 ‘뭐 이런거까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제출 전 날까지 ‘흠 귀찮은데 하지말까?‘라고 잠시 생각을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제출했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잘한 선택이다.

그렇게 온 메일. 사실 잊고 있다가 ‘너무 글을 대충 썼나’싶었는데, 알고보니 스팸 메일에 들어가있어서 소식을 뒤늦게 확인했던 것이다.

합격이라는 소식을 꽤나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지 괜시리 벅찼다. 불안했던 감정에서 벗어나 잠겨있던 물에서 나온 기분이었다.

알고보니 성윤님의 큰 뜻이 있었는데:

불합격을 많이 드리는 것이 내게 불편한 마음이였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기회를 드리고 싶었다. 불합격이 많은 요즘 시대에 내가 합격을 드려서, 참여자분들의 자존감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준은 명확히 설정해서 그 기준을 지켰다.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분들에게 불합격 메일을 보내는 것은 여전히 내게 힘든 기억이다. 인원이 많아질수록 이 괴로운 경험이 커진다.

정말이지 그릇이 다른 분이다. 그렇게 글또 10기 활동이 시작되었다.

글또 초반 한 달은 무엇을 할지 몰라서 원래 목적인 글쓰기에 집중하려고 했다. 성윤님의 글쓰기 특강도 듣고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감을 찾는 시간을 보냈었다.

그렇게 작성했던 첫 글인데.. 지금와서보니 정말 성의없다..

원래 jekyll 기반 + vimwiki로 만들었던 블로그에서 medium으로 이주하려고 했는데 한글 폰트가 맘에들지 않아서, 결국 지금 사용하고 있는 astro 블로그로 이주하게 되었다.

사실 템플릿이 좋아서 원작자에게 허락을 맡고 살짝 개조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글또에서 활동하셨던 분이었다! (10기에는 안 계신거 같다.)

그렇게 글또 초반에는 글쓰기 근육(?)을 만들어 가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소모임에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소모임

글또 활동을 말하면 소모임을 빼놓을 수 없다. 내 글또 활동에 활기를 넣어준 소중한 모임들.

피크민또

요즘 나를 보는 사람들은 피크민에 미친놈처럼 볼 지도 모른다. 왜 시작했을까?

한창 시골에 있을 때 농장 일이 끝나고 부쩍 산책을 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골은 뭔가 이상하다. 분명 서울과 같은 시간일텐데 해지는 시간이 빠르다..

항상 일 끝나고 카페가서 책 읽고 작업하다가 지는 해를 보면서 집에 돌아가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는데, 의식적으로 걷기 시작하면서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하나의 루틴이 생긴 뒤에 서울에 올라온 뒤에도 산책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피크민이라는 게임이 트위터에서 갑자기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호기심에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 귀여운지 몰랐는데 오히려 대놓고 귀엽지 않아서 보면서 정이 든 느낌이다.

열풍이 불었던 만큼 글또에서도 피크민 소모임도 있었는데 내 피크민또 첫 글을 보면..

빨간 국화가 너무 안 나와서 극대노했었나보다..

그러다 피크민또의 4장인 채정님이 열어주신 오프라인 산책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나의 첫 글또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날씨는 아직 겨울이 시작되기 전 문턱이어서 산책하기도 좋았었는데,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피자 피크민을 얻으러 용산에 피자집을 갔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해하다.

최근에 채은님과 ‘내가 왜 피크민에 이끌렸을까?‘에 대한 이상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내린 결론도 ‘무해함’ 이었다.

정말로 피크민을 하는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 피크민 덕분에 글또의 첫 인상이 좋아졌고 그 감정은 아직도 여전하다.

첫 피크민 산책에서 만났던 글또분들과 계속 산책이나 다른 소모임에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고 이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

다들 여러모로 내 정신적 건강에 큰 도움이 되주셔서 감사하다.

오늘도한문제풀었또

오늘도한문제풀었또는 알고리즘을 풀어 제출하는 소모임이다.

소모임이 생기고 초창기에는 체계없이 ‘저 이 문제 풀었어요~‘하고 이렇게 인증하는 형식이었는데 몇 가지 문제점이 보여서 4장인 지한님에게 의견을 건의드렸다.

슬랙봇으로 알고리즘 제출을 자동화하여 글또의 깃 저장소에 알아서 커밋 + 푸시하도록 하는 기능을 건의드렸는데, 지한님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셔서 적용할 수 있었다.

다음은 자동화 과정을 적은 글이다.

슬랙봇은 또봇의 아버지인 은찬님의 인프런 강의를 듣고 만들었는데, 꽤나 재밌는 경험이었다.

서비스 제작 초창기에 슬랙봇 관련 질문을 했던 적이 있는데, 은찬님과 나는 얼굴도 본 적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DM으로 큰 도움을 주셔서 완성할 수 있었고 문제점 개선까지 해냈다. (나의 파이썬 스승님..)

처음으로 나에게 서비스를 만드는 기쁨을 가져다 준 좋은 경험이었다. 다시 한번 지한님과 은찬님께 감사하다.

독서 모임

피크민또에서 인연이 된 채정님과 종진님의 추천으로 알게된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많아서 빨리 마감되었다.

사실 살면서 책을 혼자만 읽었지 독서 모임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다소 긴장되었지만, 다들 잘 대해 주셔서 마음이 편했다.

다만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기도 하고, 독서 모임의 책이 재미가 없는 부분이 나올 때는 미뤘다가 몰아 읽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서 독후감만 남기고 발제를 준비하지 못했다.

3회차부터는 미리 읽어서 내 생각을 더 잘 전하고, 기억에 남는 모임이 되도록 흥미있는 발제를 준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독서 모임은 2회차 까지 진행되었는데, 글또가 끝나도 독서 모임은 계속된다! 타인의 시간이 투자되는 만큼 의미있는 경험이 되도록 나도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후술할 쓸모또에서 알게된 유영님이 주선하신 ‘낮술낭독회’에 참여했다.

첫 낭독회는 설날 대체 휴무날이었던거 같은데, 눈이 펑펑와서 기억에 아직도 남는다.

사실 온라인 모각코에서 캠으로만 마주했던 채은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구면이었는데, 큰 어색함없이 낭독회를 즐겼다. (아직도 생생한 의성님의 종교 이야기)

최근에 했던 2번째 낭독회에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낭독회에서 처음 알게된 원규님은 블로그 글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거기서 SF 매니아만이 할 수 있는 철학적인 질문과 함께 내 머리에 오랜만에 쥐가 났다.

낭독회로 알게된 것은 이전에는 책읽고 내 생각을 글로 적는 것에 그쳤다면, 내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면서 얻는 기쁨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소중한 인연까지..!

나에게 소중한 경험을 선사해준 채정님, 유영님 두 분에게 감사하다.

쓸모또

쓸모또는 ‘쓸모 있는 10분 모각글또’인데 글또에서 제일 열심히 활동한 소모임이다. 참여한 이유는 매번 일요일에 버저비터로 글을 제출하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그걸 좀 깨보고자 참여했다.

글또를 지원하면서 적었던 목표 중 하나는 ‘타인이 내 글을 읽고 재밌고 잘 읽혔으면’ 이었다.

정현님이 기획해주신 퇴고모임과 쓸모또의 주기적인 글쓰기 시간 확보가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글 쓰기에 자극도 받으며 마감에 쫓기지 않는 글을 작성할 수 있었다.

항상 첫 주 OT때 버릇처럼 말하지만 글 제출 시간을 평균 3일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렇게 선정된 첫번째 큐레이션 글이다. 글쓰는 기쁨을 알려주고, 퇴고에 도움주신 모또짱 동민님과 종은님, 예림님에게 감사하다.

또한 쓸모또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사실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도 쓸모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정말 작은 소모임 느낌(나작쓸..)이었는데, 느낌상 1월부터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어느 모임이건 사람이 많아지면 누군가는 소외감을 느낄수 있는데, 동민님과 소진님이 그런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정말 애쓰셨다.

여기서 느낀 것은 커뮤니티라는 것은 결국 좋은 사람이 모이면 좋은 커뮤니티가 된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나를 가장 많이 바꾼 소모임으로, 내 정신적인 회복에 가장 도움되었고 나도 받은만큼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소모임이다.

쓸모또의 마무리를 다음주 일요일에 오프라인 행사와 함께 대미를 장식할 것인데 다들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삶의 지또

주원님이 주도하신 소모임으로 글또 지원 시 썼던 삶의 지도를 다시쓰는 소모임이다.

사실 처음 삶의 지도를 제출할 때 너무 필터링을 많이 거쳐서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기회가 되서 다시 적어보기로 했다.

나를 꾸밈없이 적어보려고 했는데 글 재주가 없다보니 그 때의 감정이 뒤죽박죽 섞이고, 액션 아이템을 적었을 때는 뭔가 글쓰는 기력이 다해서 용두사미가 된 듯 하다.

다른 분들의 삶의 지도도 보게 되었는데, 나는 정말 정적인 삶을 살았구나를 느낀다. 다들 순탄하지 않고 한 기로에 서서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이 텍스트를 통해 피부로 전해졌다.

단체 커피챗은 뭔가 부담스러워서 삶의지도 완성 전에 개인적으로 피크민또에서 처음 만난 의성님과 커피챗을 가졌는데, 여러모로 통하는 것도 많고 아직 신입임에도 배울 것이 정말 많은 개발자분이어서 자극받았다.

게다가 개발자로서 지향하는 부분이 나와 대부분 같아서 더욱 이끌렸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개발자 중 한 분이다.

좋은 사람과 인연이 생기는 것은 항상 즐겁다. 이를 유지하는 것은 이제 내 손에 달렸다.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소모임을 만들어주신 주원님에게 감사하다. (이렇게 계속 쓰고보니 뭔가 감사회고 같기도..)

아쉬웠던 점

아쉬운 점이 있긴한데, 글또 활동때문에 생긴 아쉬운 점은 아니다.

할건 하면서 후회없는 글또 생활을 하긴 했는데, 서비스가 돌아가게 만들기도 전에 쓸데없이 서비스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아져서 거기에 쏟은 시간이 좀 많았다.

문해력 검사 사이트를 만들면서 테스트 코드 작성에 갑자기 꽂혀 그 쪽으로 깊게 파고 들어가질 않나,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스프린트를 해봤는데 익숙치 않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 점..

중간에 프로젝트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면 다른 기술을 학습하거나(최근엔 MCP..), 병렬로 다른 프로젝트(mac os 전용 뽀모도로..)를 만지다보니 하나의 큰 아웃풋을 만들어내기 힘들었다.

여기서 내린 진단과 액션은 다음과 같다.

  • 혼자서 개발 과정을 결정 -> 팀을 짜서 진행한다.
  • 고민하는 시간이 무한하다. -> 시간을 정해놓고 완성하는 강제성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해결책은 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이다.

최근에 chingu라는 사이드 프로젝트 매칭 서비스를 발견했는데, 외국인 개발자들과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서 5월 5일에 시작하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해 볼 예정이다.

외국인들과의 소통은 어떤 점이 힘들까 궁금하기도 하고, 협업에서 어떤 점이 힘든지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추가적인 액션은 이 짧은 회고 시간에 구체적으로 적기는 힘들 것 같고, 현재 문제점을 진단하면서 추후 구체화하도록 해보자.

맺음

이건 아쉬운 점에 적는게 맞는 것 같은데 ‘이런 커뮤니티를 너무 늦게 알았다’는 점이 아쉽다. 커뮤니티 활동이 나를 이렇게 크게 바꿔 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글또의 키워드를 하나만 꼽는다고 한다면 ‘따뜻함’이다. 이런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기 위해 성윤님과 운영진들의 노고 덕에 단순 글쓰기 커뮤니티를 넘어 서로 성장하고 따뜻함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유한하다. 우리에게 남은 계절은 100번도 남지 않았기에, 인간관계도 항상 나를 스쳐지가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계절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항상 타인에게 따뜻하도록 하자.

나는 글또가 끝나도 2주마다 글을 쓰는 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더 이상 강제성은 없지만 여태까지 패스도 안 써왔으니 아깝기도 하고 나는 충분히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

잘가 글또.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 안녕?